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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반이 이끄는 부대의 개체 수는 약 칠천.
하지만 평범한 칠천이 아니었다.
순수한 인간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부대원 전원이 마인 혹은 마물인 괴물들의 군단이었다.
때문에 단위 전투력 면에서 일반적인 인간 군대와 비교할 수 없었다.
부대의 전투력을 모두 합치면 적어도 2만 혹은 3만 대군에 비견될 막강한 군단이었다.
그런 카라반의 부대를 단 둘이서 공격한다.
상식적으로 보면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제아무리 검호의 경지에 오른 자라 할지라도 칠천이나 되는 마물들을 상대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더욱이 상대는 마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최상급 마인인 카라반이 있었고, 상급 마인도 둘이나 섞여 있었다.
그러니 공격할 수 없다.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카라둠 요새를 무너트리자마자 실라테스 평원을 가로지르기 위해 고속으로 행군하는 카라반의 군대를 본 순간 거의 동시에 깨달았다.
저들을 그냥 보내면 안 된다.
지금 이 자리에서 유효타를 가해야만 한다.
유더는 이렇다 할 방해 없이 저 정도의 대군이 실라테스 평원 내부로 진입한 것을 보고 그리 생각한 것이었고, 코델리아는 언제나처럼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었다.
고민의 시간은 짧았다.
코델리아는 영웅전기2의 유더를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유더 역시 코델리아를- 인간재해라 불리던 그녀를 알고 있었다.
그러니 할 수 있다.
자살 행위 따위가 아니다.
“보여줘.”
유더가 말한 그 순간 코델리아가 광익을 펼쳤다.
아름다운 황금빛 날개를 펼치며 태양의 신위가 어린 천사의 고리를 맹렬히 회전시켰다. 거대해진 그것에 아침의 영광이 깃들었다.
“이래야 우리 코델리아지.”
인간재해.
일인군단.
대군법사.
일천 개의 마법구가 코델리아로부터 방출되어 허공에 자리했다. 어마어마한 신성력에 놀란 카라반의 군대를 향해 코델리아와 함께 돌진했다.
일어나는 것은 폭풍.
몰아치는 것은 황금의 바람!
“피해!”
상급 마인 돌체가 외쳤지만 전해지지 않았다. 일천 개의 마법 구가 만들어낸 황금빛 폭풍이 소리를 비롯한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콰가가가가가가가-!
일천 개의 마법 구가 회전했다.
코델리아를 중심으로 휘몰아쳤고, 걸리는 모든 것을 부수고 파괴했다.
“피해! 피해! 좌우로 갈라져라!”
또 다른 상급 마인 아르고가 필사적으로 외쳐댔다. 마물들 또한 생존 본능이 있어 다급히 몸을 피하니, 카라반의 군대가 단숨에 두 동강이 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해가 멈춘 것은 아니었다.
“오오오오오!”
코델리아가 움직였다. 동강 난 부대 가운데 하나를 향해 몸을 날렸고, 동시에 문라이트를 고쳐 쥐었다. 미리 충전시켜둔 마력을 일시에 분출하며 강력한 마법을 시전했다.
[어스퀘이크!]
멜리사의 인도에 따라 강력한 지진이 일어났다.
지표가 갈라지며 땅이 마물들을 집어삼켰다. 몰아치는 폭풍이 마물들을 내몰았다.
쾅! 쾅! 쾅!
칠천이란 숫자는 적지 않았다. 마물들 하나하나가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더 크니 코델리아의 지진과 폭풍이 부대 전체를 타격하지는 못 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코델리아가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마치 진짜 폭풍처럼- 아니, 허리케인처럼 전장을 휩쓰니 순식간에 일천에 가까운 마물들이 전투 불능 상태에 빠져들었다.
“아르고!”
상급 마인 돌체가 외치며 마인화를 강행했다. 장수풍뎅이 특유의 거대한 뿔과 단단한 외피가 돌체의 몸을 뒤덮었고, 아르고 역시 마인으로 화해 나비의 날개를 펼쳤다.
전술은 단순했다.
파고든다.
폭풍의 중심부로 침투해 코델리아를 직접 타격한다.
황금의 폭풍은 분명 강력했지만 그래봐야 주먹만한 크기의 마법 구로 이루어진 폭풍에 불과했다. 상급 마인의 방어력이라면 능히 견딜 수 있을 터였다.
돌체와 아르고는 시간을 끌지 않았다. 마물들 사이를 제멋대로 휘젓고 있는 코델리아를 향해 거의 동시에 돌진했다.
“우오오오오오오!”
돌체의 전신에서 일어난 강력한 마기가 황금빛 마법구들을 막아냈다. 아르고가 내지른 포효 역시 대기를 흔들어 마법구들의 궤적을 비틀어 놓았다.
코델리아는 그 둘을 보았다. 몸으로 버티며 파고드는 마인들의 모습에서 영웅전기2의 고인물들을 떠올렸다.
‘역시 그거지.’
당장 대응할 수단이 저거 밖에 없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대비책 역시 준비되어 있었다.
코델리아는 사납게 웃었다.
매혹적인 고양이과 맹수를 떠올리게 하는 미소와 함께 손을 놀려 새로운 수인을 맺었다.
코델리아의 장기.
영웅전기2의 수많은 고인물들 중에서도 오직 코델리아만이 할 수 있었던 미친 컨트롤.
황금빛 폭풍이 요동쳤다.
오백 개에 달하는 마법구들은 여전히 주변을 휩쓸며 폭풍을 이루었지만 나머지 오백 개는 그러하지 않았다.
코델리아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돌체와 아르고를 향해 몰아친다!
“더블!”
그 순간 분열했다. 오백 개의 마법구가 일천 개의 마법 구가 되었다.
“우오오!”
돌체가 다시 소리치며 가드를 굳혔다. 아르고 역시 막아내겠다는 듯 날개로 스스로를 보호했다.
하지만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코델리아는 단순히 둘에게 각기 오백 개의 마법 구를 퍼부은 것이 아니었다.
“막아봐.”
아니, 견딜 수 있으면 견뎌 봐.
오백 개의 마법 구가 돌체를 집어삼켰다. 그것들 각자가 마구잡이로 몰아쳤다면 돌체의 생각대로 될 터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열 개인가 되는 마법구를 몸으로 막아낸 순간 돌체를 깨달았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강-!
오백 개의 마법 구는 결코 아무렇게나 휘몰아치지 않았다. 마치 정밀 조작을 하듯 공격했던 곳을 다시 공격했다.
같은 곳에 핀 포인트 어택이 연이어지니 누적되는 대미지가 예상을 벗어났다. 더욱이 공격은 한 방향으로만 쏟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다섯 곳.
몸을 뒤틀어도 소용없었다. 정확히 공격했던 곳을 다시 공격해왔다.
콰가가가가가가가!
단단한 외피에 금이 갔다. 속에 멍이 들었고,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일백 연타.
다섯 곳에 가해지는 오백 번의 연격!
“아아악!”
돌체가 버티지 못 했다. 코델리아에게 접근하기는커녕 오히려 크게 밀려났다. 외피는 박살이 났고, 온 몸이 넝마나 다름이 없었다.
아르고도 같았다. 애당초 방어력이 돌체보다 아래였던 그는 가슴이 뭉개졌다.
성스러운 힘이었다.
마법 구에 어린 태양의 신위가 마인들에게 독으로 작용했다. 맞으면 맞을수록 방어력이 약해지니, 종국에 다다라서는 마법 구에 몸이 소멸하듯 부서질 지경이었다.
상식을 초월한 멀티 테스킹.
계산으로는 할 수 없는, 무의식과 본능이 만들어낸 기적의 컨트롤.
“크악!”
“칵!”
돌체와 아르고가 소멸했다. 새하얀 빛의 고리 하나가 코델리아를 휘감았고, 코델리아는 마력이 부족함을 느꼈다. 말레키스의 드래곤 하트로부터 마력을 흡수함과 동시에 더욱 거친 폭풍을 일으켰다.
휘몰아치는 일천 개의 마법 구.
하나하나가 황금으로 빛나니 마치 지상에 또 하나의 태양이 떠오른 것 같았다.
폭풍에 휩쓸린 마물들은 문자 그대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카라반은 이를 악물었다.
돌체와 아르고의 소멸을 느낀 그 순간 최상급 마인으로서 갈무리하고 있던 힘을 일시에 방출했다.
무식하게 파고드는 것은 안 된다.
공격을 상쇄하며 파고든다. 단숨에 거리를 좁혀 술자를 쓰러트린다.
정답이었다.
최상급 마인의 마기라면 잘게 쪼개진, 더욱이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태양의 신위 정도는 가벼이 밀어낼 수 있었다.
코델리아도 그것을 알았다. 때문에 카라반이 힘을 개방한 그 때 마법 구들을 집결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넓은 범위로 산개시키며 길을 하나 열었다.
애당초 생각했던 작전.
황금빛 폭풍은 강대하나 마력이 어마어마하게 소진되었다.
더욱이 적진에는 최상급 마인 또한 있으니 폭풍만으로 끝을 내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괜찮아.’
코델리아 자신만이 아니었으니까.
이 자리에는 대군전의 대가인 코델리아 자신 외에도 한 사람이- 영웅전기2 최강의 대인전 플레이어가 함께하고 있었으니까.
일인무적.
투기장의 패왕.
전투의 천재였던 코델리아조차 일대일 대결에서만큼은 한 수 물러줘야 했던 PVP의 신.
유더는 정면을 보았다. 좌우로 갈라지는 마물들의 군대 너머에서부터 돌진해오는 카라반을 보았다.
‘카라반.’
악마의 눈의 최상급 마인.
모략가인 동시에 마법사이며, 강력한 독을 가진 거미의 악마.
카라반의 등 뒤로 네 개의 발이 솟구쳐 올랐다. 거미와 같은 그것은 날카롭고 길었으며, 그 끝에서는 치명적인 맹독이 흘러나왔다.
“키아아!”
카라반이 두 눈에서 붉은 안광을 발하며 최상급 마인의 힘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그 위세가 어찌나 대단한지 코델리아가 일으킨 황금빛 폭풍 전체가 뒤흔들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가슴이 가라앉는 것은.
두근거리기는커녕 오히려 무척이나 차갑게 변하는 것은.
사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이런 경험은 전생 때부터 숱하게 하여 잘 알고 있었다.
“벨렌시아, 어쩌죠? 도무지 질 것 같지가 않아요.”
[건방지군요, 후대. 그런데 사실 저도 그래요.]
실로 무시무시한 기운이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마인들 가운데서는 최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질 것 같지 않다.
오직 이기는 미래만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검령합체.”
벨렌시아의 검기가 유더에게 더해졌다.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딤과 동시에 구천구문의 힘을 일깨웠다.
쾅!
폭발처럼 일어난 제칠문의 힘이 세상을 진감시켰다. 황금빛 폭풍을 밀어내는데 그치지 않고 돌진해오던 카라반을 순간 멈추게 만들었다.
카라반의 눈에 당황이 번졌다.
너무나 강대한 기운에 숨을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
검은 번개가 쳤다.
코델리아를 단숨에 치기 위해 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근접전에 나섰던 카라반은 작렬하는 번개를 온전히 좇지 못 하였다.
그리하여 벌어진 결과.
“아?”
카라반의 가슴이 얼어붙었다.
그녀가 타고 있던 해골마는 물론이고 발이 닿아 있던 지표가 얼음으로 뒤덮였다.
흑뢰번천.
번개와 함께 쏟아진 것은 단 한 번의 검격.
카라반의 가슴에 금이 갔다.
동시에 얼어붙은 세계 전체에 균열이 일었다.
카라반은 그제야 유더가 자신을 베고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뒤늦게나마 기운을 좇아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등 뒤에 유더가 서 있었다. 두 번째 공격을 펼치는 대신 수도를 거두었다.
설화십이검, 열두 번째 꽃송이.
낙화일섬落花一閃
콰가가가가가-
카라반의 가슴이 부서졌다. 지표가 갈라졌고, 해골마가 산산이 조각났다. 수천 개로 부서진 얼음 조각들이 거친 바람을 타고 하늘을 뒤덮으니 세상 전체가 빛나는 것 같았다.
“와.”
새하얀 빛의 고리에 휩싸인 유더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토했다.
스스로가 봐도 놀라운 성과였기 때문이다.
지평을 바라볼 수 있게 됨에 따라 검술 그 자체가 진일보하였다.
아무리 허를 찌른 기습이었다 한들 단칼에 최상급 마인을 쓰러트린 것은 굉장하다고 밖에 표현 못 할 일이었다.
[아직 멀었어요.]
이번에는 운이 좋았을 뿐.
유더는 인정했다.
카라반은 최상급 마인들 중에서도 약한 편이었고, 근접전에 미숙한 책사였다.
지금처럼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면, 코델리아가 발한 태양의 신위에 디버프를 받지 않았다면 훨씬 나은 대응을 보였을 터였다.
반면 유더 자신이 펼친 일격은 그야말로 최상이었다. 열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완벽한 일격.
하지만 그렇다 하여 이룬 성과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벨렌시아는 마치 체이스 백작이라도 된 것처럼 흥흥 거리면서도 유더를 칭찬했고, 유더는 씩 웃으며 코델리아에게 돌아갔다.
혼란에 빠진 마물의 군대.
최상급 마인과 상급 마인을 잃은 중급 마인들과 하급 마인들은 마물들을 강제로 돌진시켰다.
유효한 수단이었다.
황금빛 폭풍은 누가 봐도 마력을 어마어마하게 소모하는 마법이었고, 예상대로 코델리아의 마력이 다했기 때문이다.
폭풍이 멈췄다.
코델리아는 제자리에 주저앉아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숨을 헐떡였다.
“쳐라!”
“지금이 기회다!”
마물들은 아직 수천이나 남아 있었다.
그것들 전부가 맹목적으로 돌진하니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표 전체가 들썩거렸다.
유더가 코델리아 앞에 멈춰 섰다.
요란하게 돌진해오는 마물들을 돌아보는 대신 코델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말한대로지?”
“야, 단칼에 못 잡았으면 타이밍 완전 망했거든?”
“그래서 단칼에 잡았잖아.”
유더가 능청스럽게 말하자 코델리아는 결국 웃고 말았다.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든 한 방 쏘아주었을 텐데, 이제는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미우나 고우나- 아니, 이제는 그저 곱기만 한 우리집 사기꾼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나머지도 계획대로 가실까요?”
코델리아는 유더의 손을 잡았다. 노도처럼 밀려드는 마물들의 군세를 보며 다시 한 번 마법을 펼쳤다.
“라이프 드레인.”
유더의 무한 체력이라면 이미 지난 며칠 간 질릴 정도로- 아니, 죽을 정도로 체감했다.
그러니 주저치 않고 이용한다.
마음껏 쪽쪽 빨아내준다.
쾅! 쾅! 쾅! 쾅! 쾅!
굉음이 가까웠다. 마물들과의 거리는 이제 불과 십 미터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새침한 미소를 지으며 마법을 발동시켰다.
“선 라이트 옐로 오버 드라이브.”
찬란하게 빛나는 그것은 황매화 빛 마력질주.
다시 한 번 솟구치는 일천 개의 태양.
마물들은 더 이상 앞을 보지 못 했다.
황금빛 섬광이 세상을 뒤덮었다.
&
“져, 졌습니다.”
“뭐?”
“카라반의 군대가 대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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